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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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서은국 출판사: 21세기북스

감상

최근 들어 가장 재밌게 읽었던,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책.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게 아닌, 살기 위해 행복한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이를 기반으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술술 읽히는 책이었고, 나는 일상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느끼게 해준 책. 하지만 난 ‘행복 압정’을 뿌리지 못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구절

우리가 용돈을 받고 즐거워할 때 느끼는 행복 역시 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과의 빨간색처럼 행복감도 뇌에서 합성된 경험이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는 불변의 사실이 아니고, 당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수의 의견일 뿐이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처럼 생존 위협이 커질수록 인간도 본능적인 모습으로 회귀한다.

이처럼 세상만사를 어떤 원인이나 목적, 계획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관점을 철학에서는 ‘목적론(teleology)‘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pointless universe)‘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생명체가 가진 모든 생김새와 습성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라는 점이다.

공작새의 꼬리를 다시 떠올려 보자. 그 꼬리는 오직 짝 짓기만을 위해 설계된 매우 거추장스러운 도구다. 바로 이 공작새 꼬리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돈을 통해 동기유발을 시킨 쪽보다 연애 조건에서 나온 생각들이 더 재미있었다. 심리학자들이 이 현상에 붙인 이름은 매우 적절하다. “피카소 효과(Picasso Effect)”

이렇게 특정 반응을 증강시키는 자극을 심리학에서는 “강화물"이라고 부른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먄 했던 것이다.

쾌와 불쾌의 감정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려 주는 “생존 신호등"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부유해질수록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미국 남가주대학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이 지적한 이 현상을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고 한다.

우선 감정이라는 것은 어떤 자극에도 지속적인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다넞ㄱ인 경험을 한 번 겪으면,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해 그 후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된다.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 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사람은 가장 절대적인 행복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우선 개인의 자유감. 개인주의 국가들이 높은 행복을 누리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집단의 응집력과 통일성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이 부분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 돈에 집착할수록, 정작 행복의 원천이 되는 사람으로부터는 멀어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행복은 가치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볻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행복이나 감정은 신비한 정신적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보다 과학적인 시각은 감정의 출발지인 외부 변화에 두는 것이다. 즉,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했을까?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즉, 우리가 온갖 오명을 씌우는 쾌락주의자들의 모습이다.

행복이나 감정은 신비한 정신적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보다 과학적인 시각은 감정의 출발지인 외부 변화에 두는 것이다. 즉,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